어제 아내랑 분당 Cinus에서 차인표가 주연한 "크로싱"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저녁 9시타임을 예약해서 봤는데 비교적 늦은 시간이었지만 절대로 후회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냐면, 한번 보면 마음에 감동을 주고 사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내 귀에 익숙한 북한말(연변말과 많이 흡사함)을 들으면서 고향이 느껴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차인표가 자주 말하는 "안까이"라는 단어는 "아내"라는 말이고, "일없다"는 "괜찮다"라는 뜻 등...
너무나 익숙한 어투다. 예전에 다른 연예인들이 북한말을 연출하려고 노력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발음이 정확한데 차인표와 다른 배우들의 노력이 돗보였다.
차인표랑 아들이 처음 살았던 집을 보면 나도 중학교까지 살았던 단칸방에 불을 때는 집을 연상케 된다. 그때는 왜 그리 가난했는지... 도시락을 쇠로 된 것을 들고 다니는게 어찌나 쪽팔리던지...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고난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추억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차인표보다 아들이 더 북한말을 잘했다. 어린애라서 그런지 말을 제꺽 배웠고 정말로 완전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연기를 너무 잘해서 어색한 감도 없었고 당황스러움, 기쁨, 슬픔 등 감정 표달이 아주 좋았다.
사실 차인표와 같은 사람들이 연변을 비롯한 중국 지역에 정말 많다. 내가 살았던 지역에서 몇시간만 가면 북한 사람들이 새벽에 자주 왔다갔다 하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는 북한 사람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었다. 연길에는 북한 식당도 있었으니깐...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붙잡히면 쇄골에 갈구리를 껴서 끌고 간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많이 들었는데 어제 영화를 보면서 정말 북한의 상황은 암담하고 그들이 왜 뛰쳐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되었다.
정말이지, 지금 내 아내가 병치료하겠는데 한국에 약이 없다면 나는 다른 나라라도 갈 것이다. 차인표(용수)의 마음을 깊이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북한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가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차인표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한국에 왔고 아들과 통화하던 그때... 16년전 엄마가 한국가서 나랑 통화할 때가 기억난다. 그때 집에 전화 없어서 엄마 전화를 받으려면 북한과 인접해 있는 도문이라는 데 가서 거기서 이모가 출근하는 회사 전화로 겨우 어머니랑 통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달에 한번 엄마 전화를 받았고 결국 10년만에 내가 엄마를 찾아서 한국에 유학오게 된 셈이다.
그때 그 심정... 차인표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정말 많이 아팠다.
근데 나는 결국 무사히 한국에 왔지만 차인표 아들은 악전고투하다가(정말 참담하다) "여자친구"까지 잃고 겨우 살아서 중국까지 왔는데 몽골 접경을 지나다가... 너무 지치고 허기지고 사막의 추위때문에 결국... 아버지와 만나지 못하는데...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정말 내가 용수라면 어떤 심정이었을 까 생각한다.
지금도 정말로 수많은 북한 이주민들이 이 땅에서 사는데 그분들중 상당부분이 이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말로 이 사회가 그분들을 차별시하는 정책들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그들에게 정말로 다가가서 포옹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차인표가 첨으로 한국왔을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간호사들이 불러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는 이런 노래보다 위로의 말씀과 같이 울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이 고통을 당하는데 사랑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잘사는 나라에만 있는가요?" 차인표의 울분을 토로하는 말이다. 그렇다...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타락한 땅에서 하나님도 지금 울고 계실 것이다. 나중에 통일하면 북한의 수많은 기독교 전사들이 엄청난 일을 해낼 것으로 믿고 그분들이 이 땅을 변화시킬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자녀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 영화,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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